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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년병학교 간 쑨원, 거수경례 웨이리황에 “나를 보위해라”
━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〈775〉 태평양 전쟁 말기, 버마 파견군 최고사령관 시절의 웨이리황(오른쪽 넷째). 여섯째가 참모장 쑨리런(孫立仁). 쑨은 한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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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 전투기 조종사 출신 천라드, 중국 공군의 날개 활짝 펴다
━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〈632〉 1943년 10월 29일, 중국 항공위원들과 중국 공군기지를 시찰하는 천라드. 앞줄 오른쪽 첫째는 국민당 군 총 참모장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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펑위샹 “애들은 애완견 아니다, 능력 갖추게 엄히 키워야”
━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〈661〉 펑위샹과 리더촨은 1남 3녀를 뒀다. 뒷줄이 장녀 펑리다. 1940년, 충칭. [사진 김명호] 한동안 펑위샹(馮玉祥·풍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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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뉴스 클립] 중국 도시 이야기 (18) 미녀의 도시 충칭(重慶)
인구 3300만 명의 메트로폴리스 충칭(重慶)시는 1997년 중국의 네 번째 직할시로 독립했다. 올 초 보시라이(薄熙來) 당서기 몰락으로 세계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‘붉은 도시’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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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뉴스 클립] 중국 도시 이야기 ⑧ 광저우(廣州)
올해는 2133년간 이어진 중국의 황제 지배체제를 무너뜨린 신해혁명 발발 100주년이다. 신해혁명은 우한(武漢) 신군의 봉기로 시작됐지만 주역은 쑨원(孫文·손문·1866~1925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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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심층연구] 북한·중국의 기묘한 애증사
1956년 김일성 정권 당시 ‘종파사건’으로 중국과 긴장관계 시작… 정상외교로 양국관계 유지해왔지만 베이징 발 대북 영향력의 실효성은 미지수중국은 오랫동안 한반도의 안정을 자국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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쉬중쉰 몰락 부른 류즈단·펑더화이와의 인연
━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1 1932년 가을, 산간변구(陝甘邊區)시절의 시중쉰(왼쪽 첫째)과 류즈단(가운데). 살다 보면, 세상사 사람 놀음이라는 말을 자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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장쭤린 “내 자식이라도 거들먹대면 두들겨 패라”
장쉐량(앞줄 왼쪽 셋째)을 호위한 동북강무당 출신 장교들. 1936년 겨울, 장쉐량은 이들과 함께 시안(西安)에서 장제스를 감금해 2차 국공연합과 항일전쟁을 이끌어냈다. [사진 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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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전 담판 시작되자 천껑 “이젠 갱도전 펼쳐 방어 힘써야”
━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정치학자 라종일 교수님께서 이런 얘기 해주셨다. “중국 개국 대장 천껑(陳賡·진갱)의 아들과 잘 안다. 한국전쟁 실제로 치른 사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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쑨리런 “장제스 총통 허물 말하는 건 부하 도리 아니다”
━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대륙 시절의 쑨리런. 1948년 가을, 난징(南京) 소재 육군 부 총사령관 집무실. [사진 김명호 제공] 1956년 6월, 전 육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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장제스가 꼽은 황푸 최고 인재는 ‘전쟁 마귀’ 린뱌오
장정(長征)을 마친 린뱌오(앉아있는 사람 가운데 왼쪽에서 넷째)는 옌안의 홍군대학 교장에 취임했다. 앞줄 둘째가 홍군대학 교육위원회 주임과 정치위원을 겸한 마오쩌둥. 뒷줄 왼쪽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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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정화 정신’ 망각한 중국, 海禁정책 펴다 식민의 아픔
정화는 62척의 선단과 2만8000여 명의 승무원으로 구성된 대규모 원정대를 이끌고 모두 7차례에 걸쳐 탐험에 나섰다. 동남아시아의 자바·수마트라, 인도양 콜카타, 페르시아만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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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글로벌 아이] 안태의 후손을 찾습니다
예영준베이징 특파원주 광저우(廣州) 총영사관에 근무하는 강정애 박사가 5년째 애타게 찾는 사람이 있다. 황푸(黃浦)군관학교 생도였던 독립열사 안태(安台)의 후손이다. 강 박사가 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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광둥상단 단장 천렌보, 무장세력 갖추고 치안 유지
━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광저우의 혁명세력도 상단과 접촉을 게을리하지 않았다. 황푸군관학교 교관들과 광저우 주변 도시 상단대표들과 회합한 정치부 주임 저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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장제스 총애 받던 참모총장, 장징궈 최측근 군복 벗겨
━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〈725〉 장제스는 검소하고 나대지 않는 소련 며느리를 총애했다. 장팡량(蔣方良)이라는 중국 이름을 지어줬다. 장징궈와 친했던 C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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버마 원정서 일본군 대대 섬멸 … 국제적 명성 얻은 쑨리런
━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국공전쟁 초기 동북을 시찰, 방어시설 둘러보는 쑨리런(앞줄 왼쪽 둘째). 1947년 봄, 창춘(長春). 전쟁은 정상적인 사람들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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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북왕 최측근 슝샹후이는 속 시뻘건 공산당 ‘빨대’
1947년 3월 국민당 중앙군을 이끌고 공산당 근거지 옌안을 점령한 후쭝난(가운데). [사진 김명호] 깨지지 않는 동업은 없다. 정당 간의 연합도 일종의 동업이다. 결국은 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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류신민 미모에 말 더듬고 얼굴 붉힌 청년장군 린뱌오
하늘은 공평하다. 산시(陝西)성 북부(陝北), 황토고원지대의 중심부에 위치한 미즈(米脂)현은 수천 년 간 내세울 게 없었다. 대신 미인들이 많았다. 류신민(劉新民·유신민)은 미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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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셜 “루스벨트·트루먼도 설득, 장제스·마오쩌둥쯤이야”
━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〈769〉 1945년 겨울, 전 만주국 수도였던 창춘(長春)의 시장 풍경. [사진 김명호] 마오쩌둥은 장제스, 루스벨트, 트루먼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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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서북의 왕’ 후쭝난, 키 작아 황푸군관학교 쫓겨날 뻔
후쭝난이 20년간 따라다닌 예샤디(葉霞翟·왼쪽 첫째). 오른쪽 첫째는 전 주소련 대사 푸빙창(傅秉常). 1937년 칭다오(靑島). [사진 김명호] 수천 년간, 중국은 황제 밑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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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장제스는 교양 겸비한 불량배” … 재목 알아본 장징장
총리 시절 전인대 상무위원장 둥비우(董必武)와 함께 랴오중카이(廖仲愷)의 무덤을 찾은 저우언라이(周恩來·오른쪽 둘째). 가운데 흰 양복 입은 사람은 랴오중카이의 아들 랴오청즈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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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시코 “중국인들끼리 죽고 죽이게 정보 넘기자” 일본 설득
━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〈645〉 1934년 6월 16일 ‘국민혁명군 중앙군관학교(황푸군관학교의 본명)’ 성립 10주년 기념식을 마치고 열병식을 진행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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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색·홍색·회색 용광로 ‘황푸군관’은 중국 리더 제조창
1924년 1월 광저우에서 열린 제1차 중국국민당 대표자 대회 모습. 국민당과의 합작과 황푸군관학교 설립안을 통과시켰다. [사진 김명호] 잡교(雜交)를 거쳐 만들어진 동식물이 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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장쭤린 “내 자식이라도 거들먹대면 두들겨 패라”
장쉐량(앞줄 왼쪽 셋째)을 호위한 동북강무당 출신 장교들. 1936년 겨울, 장쉐량은 이들과 함께 시안(西安)에서 장제스를 감금해 2차 국공연합과 항일전쟁을 이끌어냈다. [사진